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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들/문학·철학·예술

법정: 무소유

고등학생때 친구로부터 법정 스님의 "무소유(문고판, 1987)"를 선물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냥 수필집의 하나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내용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많았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책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그 책은 잃어버렸다.

누구에게 빌려준 적도 없었고 버린 적은 더더욱 없었다.

좋아하는 책을 버릴리 없다.

 

법정스님 입적 후 온 집을 다 뒤져도 결국 책은 나오지 않았고  문고판 "무소유"는 이제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책이 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드물게 문고판의 이미지가 나온다.

 

https://blog.naver.com/alive0920/223045813265

 

무소유-법정

<녹은 그 쇠를 먹는다>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이 두루 받아들리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

blog.naver.com

 

 

기억에 남은 책의 모습에 아쉬움은 더 커지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올 해 봄에 우연히 1999년 출판된 양장본 "무소유"를 중고 도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구매를 했고 아쉬운대로 책의 내용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내 기억 속의 내용과 뭔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히 법정스님의 수필을 그대로 출간한 것일텐데... 왜인지 그 표현이, 사용했던 단어가 살짝 다른 것 같은 페이지가 가끔 눈에 띄고 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을까..

원래의 책을 구할 수 없으니 이제 비교는 어렵겠지만..

(오늘 다시 검색해보니 60,000원에 팔고있는 중고도서 문고판 "무소유"가 나왔다. 인쇄된 정가는 1,000원..)

 

어쩌면 내가 예전의 기억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는 많은 부분 공감을 한다.

그러나 속세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무소유의 범위는 개인마다 모두 다르겠지.

현실을 살기 위해서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더라도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나의 기억도 그러한 범위에 영향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표현이 좀 다르면 어떤가..

단어의 선택이 그렇게 중요한가..

예전에 좋아했던 글의 내용이 기억속에서 퇴색하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면 그것으로 좋은게 아닌가..

기억에서도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나는 법정 스님정도의 수준에는 다다를 수 없을 것 같다.

모두 버리고 무소유로 돌아가는 것은 아마 선택하지 못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 어때?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받아들이는 형태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현실 속에서 가능한 한 후회는 줄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면 소유냐 무소유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은 나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동시에 그에 휘둘리는 것, 그 방향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도 무소유의 실천 중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궤변일까?

 

궤변일 수도 있다.

그래도 역시 이렇게 생각하자.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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